다테야마의 문화와 역사
1300년 다테야마 신앙
지옥과 정토가 인접해 있는 산
다테야마는 후지산,하쿠산과 함께 「일본 3대 영산(靈山)」중 하나로 꼽히며, 1300년 전부터 이어져온 산악 신앙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다테야마는 북알프스로 연결되는 주요 산악 지대를 가리키며, 중심은 오야마(雄山3,003m), 오난지야마(大汝山3,015m), 후지노오리타테(富士ノ折立2,999m)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더해 쓰루기다케(剣岳2,999m)나 조도산(浄土山2,836m) 등 주변의 봉우리를 포함한 일대를 ‘다테야마’라고 부르기도 하며, 다양성이 풍부한 광대한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다.
자연을 경외하고, 기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일본에서는 산・강・바다 등의 다양한 자연이 사람들의 생활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자연은 물의 근원이자 식량과 자원을 제공해 주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홍수나 분화 등 심각한 재해를 일으키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자연 현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그 앞에서 기도하며, 자연이 주는 은혜에 감사하며 언제부터인가 자연 속에 신이 존재한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커다란 산에 대해서는 산 자체를 신으로 여기거나 산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산에 직접 들어가는 것을 두렵고 경외스러운 일로 생각해, 멀리서 산을 향해 절하는 ‘요하이(遥拝)’라는 형태로 산악 신앙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다테야마는 신이 머무는 산
다테야마는 오래전부터 산악 신앙이 뿌리 내린 영산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1300년 전의 한 노래에서는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것은 신의 힘 때문”이라고 노래한 것에서도 그 신앙의 깊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신성한 영역으로 여겨진 이곳은 ‘저승’으로도 인식되어, 본래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죽은 이의 영혼이 모이는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다테야마는 이후 불교적 사상과 융합되어, 슈겐샤(修験者)들이 수행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테야마 신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고 발전되어 온 것입니다.
자연 경관을 바탕으로 하는 다테야마 신앙
산이 사후 세계로 통하는 곳이라는 사상의 영향을 받아 다테야마 안에 지옥과 극락이 공존한다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다테야마에서 이러한 신앙이 태어난 배경에는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는 자연 경관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유독가스가 끊임없이 분출되는 지고쿠다니(地獄谷)나 날카로운 바위가 가시처럼 솟아 있는 쓰루기다케(剱岳)는 불교에서 악행을 저지른 자가 가는 사후 세계인 ‘지옥’에 비유되었습니다. 한편 꽃이 만발한 조도산(浄土山)은 덕이 높은 이가 죽은 뒤 맞이하게 되는 ‘극락정토’로 에 빗대어졌습니다.
불교의 사생관(死生観), 윤회전생과 지옥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죽은 뒤 생전에 지은 선행이나 악행에 따라 다양한 세계에 다시 태어나며, 그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를 윤회전생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여러 세계를 **육도(六道)**라고 하며, 인간계와 지옥 세계도 그 육도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되었지만, 다테야마 신앙에서는 “다테야마에 올라 심신을 정화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어 사람들은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다테야마를 올랐습니다. 이러한 신앙에 따라 수행 목적으로 오르는 산행을 젠조 토하이(禅定登拝)라고 합니다.
다테야마 신앙에서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을 제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행이며,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이기도 했습니다.
다테야마 신앙과 다테야마 만다라
에도 시대에는 다테야마 산기슭에 위치한 아시쿠라지(芦峅寺)와 이와쿠라지(岩峅寺)가 젠조토하이(禅定登拝)의 거점이 되었고, 이 지역에는 많은 슈쿠보(宿坊, 수행자 숙소)가 줄지어 세워졌습니다.
슈쿠보 주인들은 다테야마 신앙의 세계관을 그린 ‘다테야마 만다라(立山曼荼羅)’를 들고 일본 전국을 순회하며 신앙을 전파하고, 다테야마 젠조토하이를 권장하며 다테야마 신앙을 널리 알렸습니다.
또한, 다테야마 만다라의 그림 풀이를 듣는 것만으로도 다테야마에 실제로 등산하여 수행한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여겨졌습니다.